해럴드 코다 “여성은 여성 의식하며 옷 입는다”
지춘희 “아니다, 남성의 시선 신경쓴다”

패션 브랜드마다 ‘역사와 전통’을 얘기하는 시대다. 동시에 저마다 ‘독창적인 정체성’도 부르짖는다. 소위 명품 브랜드는 ‘예술로 승화한 장인정신’도 내세운다. 무엇이 진실일까. 과연 패션이 예술인가.

 지난 1일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린 박물관학 국제학술대회 참석차 방한한 해럴드 코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복식 부문 수석 큐레이터와 패션 디자이너 지춘희씨를 함께 만났다. 이 시대 패션과 예술, 여성과 패션에 대해 생각해 보는 자리였다. 해럴드 코다는 올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더 매퀸의 작품을 주제로 ‘야성적인 아름다움’이란 전시를 기획해 큰 반향을 일으킨 인물이다.


-예술과 패션

 해럴드 코다(이하 코)=패션이 예술이냐고? 사진을 생각하면 된다. 아무나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모든 사진을 예술이라고 하진 않는다. 빛과 피사체를 잘 살펴 작가만의 촬영 의도가 묻어나는 작품만 예술 사진이 되는 것이다. ‘예술로 승화한 패션’ ‘박물관에 전시 가능한 패션’도 마찬가지다. 패션 디자이너가 만든 모든 옷이 예술은 아니다. 시대의 미감을 담고 창의적인 시각이 있는 것만 예술이 된다.

 지춘희(이하 지)=메트 전시를 포함해 여러 나라의 복식 전시를 봤지만 예술과 패션의 경계는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코=팝아트 작가 앤디 워홀은 예술과 상업의 경계도 모호하게 만들었다. 상품 광고를 회화에 끌어들여 예술로 바꿔 놨다. 이후 예술의 지평이 훨씬 더 넓어졌다고 생각한다.

 지=사람들이 생각하는 예술적인 패션이란 ‘입을 수 없는 희한하게 생긴 옷’쯤이다. 하지만 그것보단 한 패션 디자이너의 독창적 시각이 반영된 것을 예술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코=메트 박물관 복식 부문에선 지금까지 생존 패션 디자이너의 전시를 기획한 적이 없다. ‘브랜드 홍보’가 될까 염려해서이기도 한데, 앞으론 (당신처럼) 생존 패션 디자이너의 작품에서도 ‘얼마나 독특한 컨셉트가 잘 살아 있느냐’ ‘시대적인 창의성을 어떤 식으로 표현했느냐’에 따라 전시를 기획해 볼 작정이다. 고백하건대, 올봄 알렉산더 매퀸 전시는 원래 매퀸이 살아 있을 때 기획을 시작했던 것이었다. 매퀸은 (살아 있었다면) 최초의 생존 작가 메트 전시 주인공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매퀸 전시는 박물관 역사를 통틀어서도 최대 흥행작으로 꼽히고 있다. 대개 25만 명 정도 관람객이 들면 블록버스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매퀸이 죽자 박물관 쪽에선 그보다 많은 35만~40만 명 정도를 예상했다. 결과는 60만여 명이었다. 놀라운 숫자다. 비단 이것은 매퀸의 인기만을 보여준 게 아니라 사람들이 이미 패션을 어느 정도 예술로 받아들이고, 또 미술관에서 패션 디자이너의 작품 전시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방증이다.

-여성과 패션

 코=샤넬은 ‘여성은 남성을 위해 옷을 입는다. 이 세상에 모두 여자만 있다면 다들 벗고 다닐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난 동의하지 않는다. 어떤 여성들은 남성을 의식하며, 그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고민하며 옷을 입는다. 하지만 또 대부분의 여성들은 오히려 여성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비칠까’를 더 신경 쓰며 옷을 입는다.

 지=글쎄. 여자 기숙사에선 모두 씻지도 않은 채 아무렇게나 하고 어울려 지낸다. 그러다 남자라도 하나 보이면 그런 모습을 감추느라 난리가 나기도 하고. 아마 대부분의 여자는 남성을 의식해 옷을 입지 않을까.

 코=데이비드 게펜(영화 제작자. 본래 음반 제작자로 큰돈을 벌었고, 스티븐 스필버그와 동업해 영화사 드림웍스를 세웠다)은 늘 구깃구깃한 셔츠를 입고 다닌다. 집에 일하는 사람이 여럿 있는데도 그런다. 아마 가사도우미에게 ‘내 셔츠는 절대 다림질하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이유가 뭘까. 이미 그들에게 패션 혹은 의복이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일 뿐이지 남들에게 멋있거나 예뻐 보이기 위한 도구는 아닌 셈이다. 그냥 자기가 원하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방법이라고 느끼고 있어서일 게다. 그러니 여성에게도 패션이란 이런 맥락이 더 강할 것이다.

 지=그런 측면도 있지만 남성보다 여성이 더욱 감성적이니 아름다워야 하는 패션에 대해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여성에게 패션이 없다면 거긴 ‘사하라 사막’과 같을 것이다.

 코=그건 여성뿐 아니라 사람에게 해당하는 말 아닐까. 패션이 없는 사람은 상상할 수 없다.

 지=(웃음)

 코=오히려 고민은 다른 데 있다. 점심 식사 자리에 나온 어떤 부유한 여인이 이렇게 말했다. “패스트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 스웨터를 입고 있었는데 동석한 사람이 ‘예쁘다’고 하더라. 말을 듣는 순간 ‘어? 그렇담 계속 이런 브랜드 옷만 입어도 되나? 고심 끝에 고른, 정성 가득한 디자이너 옷만 예쁘다고 하는 게 아니잖아’ 하는 생각이 들더라.” 고급 취향을 갈고 닦아온 사람들도, 진짜 장인과 디자이너의 작품을 존중하던 사람들조차도 가치관이 흔들릴 정도로 몰개성 패션이 넘쳐나고 패션은 과잉 소비되고 있다. 가와쿠보 레이(브랜드 ‘콤데가르송’을 만드는 패션 디자이너)는 언젠가 내게 ‘난 구찌그룹이 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강력한 브랜드 정체성을 등에 업은 채, 더 많이 팔리고, 더 대중 취향에 잘 맞는 그런 옷을 만들기 싫단 얘기다. 바르냐 그르냐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런 디자이너들이 있어야 복식사가 더욱 풍성해지지 않겠나.

글=강승민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by A&Z 2011. 10. 10.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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